Nothing Is Impossible 인간 이순신의 기록, 난중일기 - 이순신이 백의종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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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학습

인간 이순신의 기록, 난중일기 - 이순신이 백의종군한 이유

한국사전 –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제1부_내가 무너지면 조선도 무너진다

 

- 필사본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을 만나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그러나 이충무공전서의 기록만으로 이순신을 만나기는 어렵다.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를 위해, 인간적인 기록들은 삭제해 버렸다. 하지만 친필초고에는 평범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남아 있다. 때로는 두려워하고, 다른 이를 미워하기도 하며, 가족들을 염려했던 평범한 인간 이순신. 친필일기를 통해 살아 있는 인간 이순신의 숨결을 만나본다. 

 

- 이순신. 그의 섬세함을 들여다보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이순신은 강인한 전쟁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순신은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아내의 병을 걱정하는 남편이었고, 아들의 안부를 염려하는 아버지였으며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이었다.

-아내의 병이 위중하다고 했다.

- [갑오년 8월 27일 일기 中] 

-어머니를 떠나 두 번이나 남쪽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한을 이길 수가 없다.

- [임진년 1월 1일 일기 中] 이러한 세심한 성격은 휘하의 부하들을 대할 때 더욱 드러났다. 전시 때마다 부상자와 전사자들의 소속과 실명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물론, 전사자 가족들의 생계까지 신경써주었다. 

- 임진왜란. 이순신은 예감하고 있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임진년. 그러나 조정은 오히려 수군폐지를 논의한다. 이순신은 즉각 반발하는 장계를 올린다. 또한 휘하 포구 순시에 나서, 임무에 소홀한 부하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등 전쟁에 대비한다. 그 과정에서 엿보이는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를 살펴본다. 

- 이순신은 전쟁을 두려워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은 4월 13일. 이순신이 전쟁 소식을 들은 것은 이틀 뒤인 4월 15일이었다.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하고, 조선군은 패배를 거듭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5월이 될 때까지 출전을 미룬다. 그는 전쟁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순신은 어떻게 두려움을 떨치고, 조선군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한국사전 –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제2부_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정유년 6개월간의 기록! 웅크린 영웅 이순신을 추적한다. 곽란이 나서 심하게 앓았다. 용변도 보지 못했다 - 정유년 난중일기 中 명량해전 직전 이순신이 겪은 극한의 고통! 친필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다. 

 

  - 축(縮), 웅크린 영웅 1597년 정유년, 당시 이순신의 개인적 상황은 한 인간이 견뎌내기 어려울 정도로 암담했다. 백의종군 길에 오른 지 십여 일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모친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조선 수군 재건이란 막중한 임무를 지게 된다. 이순신은 자주 웅크리고(縮) 있었다. 승산이 희박한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함부로 두려움을 내비칠 수 없었던 장수는 고독했다. 

- 장군 이순신, 전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정유년 7월, 조선 수군의 칠천량해전 대패 후 왜군은 파죽지세로 침략해 들어오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세의 역전이 절실했던 상황. 당시 친필 난중일기 속의 이순신은 9월 16일 명량해전을 앞두고 심한 스트레스성 질환 증세를 보인다. 식은땀을 흘리고 잦은 구토와 설사를 했다. - 12 vs. 330, 절망의 끝에서 필사즉생을 외치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단 12척의 배. 상대인 왜군은 330여 척의 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선택한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결투였다. 그는 12척의 배를 이끌고 울돌목으로 나아간다. 마침내 결단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유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선 세계 해전 역사에 남을 전투가 시작되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항거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 만합니다.” 

 

- [이충무공전서] 행록 中 

- 친필 난중일기 속에서 공포와 싸운 한 인간을 만나다 그러나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 보관된 친필 난중일기에는 여태까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이순신의 모습이 있다. 문인 출신으로 무관이 된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예민한 감각으로 한 시대를 살았다. 그에게 가장 큰 적은 공포였다. 그러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한국사전 –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제3부_몸은 죽고 나라는 살다

 

7년 전쟁 마지막 장(場), 노량해전 이순신 최후의 기록을 난중일기를 통해 만나본다! 

 

- 전사냐, 자살이냐? 이순신 최후의 진실 이순신의 전사 이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전사가 아닌 자살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살아서 은둔했다는 설까지.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이순신의 최후.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계속 제기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난중일기, 살아 남은자의 통곡 명량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하던 이순신은 불길한 꿈을 꾼다. 그날 저녁 날아든 비보는 아산 본가에서 있던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이었다. 정유년 초 어머니를 잃었던 이순신은 아들마저 잃었다. 가족도 지키지 못한 채 계속 왜군과 싸워야 했던 이순신. 영웅의 이름 아래 가려진 그의 심정을 난중일기는 기록하고 있다. “나는 내일이 막내 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인데도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했다.” 

 

-정유(1597)년 10월16일 일기 - 조선은 이순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명량해전에서 12척으로 133척과 맞서 승리한 이순신. 그러나 선조의 평가는 달랐다. “이순신이 사소한 왜적을 잡은 것은 바로 그의 직분에 마땅한 일이며 큰 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조실록 中] 선조에게 이순신은 나라를 지키는 장수였지만 또한 경계의 대상이었다.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투옥, 백의종군까지 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 이순신에게 수군통제사의 자리는 조선을 지키는 동시에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는 자리였다. 

 

- 노량해전 그 최후의 기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왜군은 급하게 철수를 시도한다. 명나라 도독 진린은 이순신에게 왜군을 보내주자고 청하지만 이순신은 이를 거절한다. 1598년 11월 18일. 이순신은 퇴각하는 왜군을 관음포로 유인한다. 19일. 이순신은 뱃머리로 내려가 몸소 북을 치며 지휘를 시작한다. 노량해전은 승리로 끝났고 영웅의 최후는 장렬했다. 

 

 戰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 

 

[징비록] [명량] 영화로 보는 설민석의 역사이야기 1부 전쟁의 신, 이순신

 

우리가 진짜 몰랐던 임진왜란!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배경과 경과를 살펴보고, 이순신의 불패신화와 백의종군 내막을 들어본다.

 

 이순신이 서인들의 모함을 받고 한양으로 압송돼서 국문과 고초를 당하고 있을 때,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그러나 원균 또한 전세가 불리함을 알고 출전하지 않고 시간 끌다가 권율 장군한테 곤장 맞고 마지못해 출정한다. 그러나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대패하여 전멸되다시피 한다. 이때 당시 경상 우수사 배설이 전함 12척을 후퇴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소인배 선조 아래에는 실력 없는 간신배들만 우글거리는 관계로) 추후 복귀한 이순신이 나중에 '아직 소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전의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도망(?)갔다가 다시 합류하는 데 꽤 많은 시일이 걸렸고 이순신 장군이 난중(정유)일기 중에 배설이 배를 가지고 빨리 합류하지 않아서 괘씸하다는 내용이 남아 있기도 한바 현재에도 좀 비겁하고 야비한 인물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12척도 없었다면 이순신의 멋진 명량해전도 없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함으로 다행한 일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KBS가 그나마 전대갈 방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쥐박이가 KBS를 장악하기 이전으로 돌아가 정연주 사장을 다시 복귀시키는 것이다. 2008년 이전의 KBS는 그래도 나름 괜찮았는데;;;)

 

후세에 이름이 길이길이 남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던 이순신 장군, 그의 리더십이 요즘 다시 크게 재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시밭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자가 얼마나 되랴? '워라밸'이라는 말처럼 민족과 국가를 위하면서도 자신의 삶도 행복하게 가꾸어갈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과 역할모델이 필요하다.